한국과 미국: 로스쿨 공부와 시험의 차이(2019년)
안녕하세요. 한국은 날씨가 갑자기 더워졌다는데 건강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이곳 애틀랜타는 점점 여름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애틀랜타의 별명이 'Hot-lanta"인데요, 여름에 좀 덥긴 합니다. 그런데 실내에서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하는 경우에는 에어컨이 너무 세서 추위를 더 느끼게 됩니다 ㅜㅜ. 미국 생활이 걷는 일은 별로 없고 대부분 차로 이동하다 보니 날씨가 더워도 실제 더위를 느낄 겨를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그나마 밖에 주차했던 차에 딱 탔을 때 정도? 한국에서는 직업적 특성상 한 여름에도 긴 와이셔츠 입고 출퇴근하고 법원 걸어 다니느라 고생했었죠.
저는 지금 일주일의 짧은 방학을 즐기고 있습니다. 봄 학기 기말시험은 저번 주로 끝났고, 여름학기는 다음 주부터 시작합니다. 왜 여름학기를 다니는지 궁금하실 분들도 있을 겁니다. 보통 LLM은 2학기 코스인데요, 우리 학교를 비롯한 일부 로스쿨은 3학기 코스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외국인 학생들이다 보니 26학점을 3학기로 분산시켜 학업의 부담을 좀 줄여주겠다는 취지입니다.
참고로 제 학사일정에 변경이 생겼습니다. 저는 LLM 지원하면서 State Bar 시험을 볼 생각 없이 그냥 학교 다시면서 Patent Agent 잡을 찾으려 했었는데요, 학교 다니며 만났던 교수님, 현직 법조인들 중 많은 분들이 State Bar 도 응시할 것을 추천하셨습니다. 앞으로 경력상 기회면에서 더 유리하고 너 정도면 충분히 합격할 수 있다고 하시더군요. 알아보니, 다행히 5과목 정도를 더 들으면 조지아 Bar에 응시할 자격이 생깁니다. 담당 교수와의 상담 끝에 올가을학기/내년 봄 학기에 걸쳐서 수업을 듣고 내년 7월 Bar 시험에 응시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과목이 많지 않아서 일과 병행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물론 full-time offer를 받는 전제하에서).
서론이 좀 길었는데요, 이번 포스팅은 제가 3년간 경험한 한국 로스쿨과 1년 정도 경험한 미국 로스쿨을 공부 방법 및 시험을 비교해보고자 합니다. 물론 제 개인적인 경험에 기초한 것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상황과 좀 다를 수 있습니다.^^
I. 공부법의 차이
학부에서 공학을 전공하고 엔지니어로 일하다가 로스쿨에 입학해서 법 공부를 하려니, 교재나 공부 방법부터 너무 생소해서 적응하느라 고생했던 기억이 납니다. 교수 저, 강사 저, 사례집, 단권화 등 사시계에서 통용되는 어휘나 공부 방법들은 마치 딴 나라 언어 같았습니다. 법대 출신 동기들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어깨너머로 그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서 조금씩 적응해 갔죠.
한국에서 공부했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주요 과목의 경우 시험용 법전을 수업 시간에 거의 챙겨 갔던 것 같고 법학 교수님들이 저술한 교과서로 공부를 했습니다. (참고로 그때 형법을 가르치시던 분이 지금은 법무부 장관으로 계신데, 뉴스로 접할 때마다 좀 신기합니다.) 아무래도 교수 저는 말도 어렵고 편집도 좀 올드해서 가독성이 좋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시계 유명 강사의 교재를 보조 교재로 썼고 온라인 강의를 듣기도 했습니다. 민법은 박승수(였나?), 형법은 신호진, 행정법은 정성균 등을 본 걸로 기억합니다. 시험은 다 사례형(미국식으로는 에세이형)으로 나왔기 때문에 시험 대비를 위해서는 사례문제를 모아 놓은 교재인 사례집으로 공부했었습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말이 '단권화'라고 하는 것인데요. 원래 사시 시절부터 있었던 개념으로서 사시 보기 직전에 쭉 훑어볼 수 있는 압축 교재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없던 교재를 만든다기보다는 자기가 가장 선호하는 교재에 밑줄을 긋거나 내용을 삭제, 추가하는 형식으로 해서 과목당 한 권으로 된 최종 무기를 만드는 것이죠. 법학 공부의 범위가 워낙 방대하다 보니 어떻게 보면 사시 준비의 과정은 시험장에 들고 갈 자기만의 교재 (과목당) 하나를 만드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전통(?)과 체계들이 로스쿨 공부에도 거의 그대로 통용되었던 것 같습니다. 공부해야 할 법학은 내용이나 양면에서 그대로이고, 저희에게는 변호사 시험이라는 최종 관문이 있었으니까요. 이런 단권화된 자료들을 시험 시간 직전에 빠르게 훑어보는 걸 '눈에 바른다'라고 합니다^^
미 국 로스쿨에서 공부해보니 한국과는 차이가 좀 있었는데, 제 생각에는 성문법 체계와 불문법 체계에서 발생하는 차이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일단 여기서는 시험용 법전이라는 개념 차체가 없습니다. 한국 같은 경우에는 변호사시험 볼 때 법무부가 배포하는 변호사시험용 법전이라는 것이 있고 학교에서 공부할 때도 이와 동일한 내용의 출판사 버전 법전을 가지고 공부했는데, 여기는 그런 게 없는 것 같습니다. (제가 아직 Bar 과목을 수강하거나 공부하지 않아서 불확실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미국 연방법(the United States Code) 및 조지아 주법(the Official Code of Georgia)이 적힌 법전은 도서관에 있습니다^^
또 하나 큰 차이는 교과서입니다. 여기서는 교과서를 textbook이라고 하기보다는 casebook으로 부르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수많은 판례들의 편집본을 체계적 목차에 따라 재구성한 책이라고 보면 됩니다. 한국의 법서의 경우 각 챕터에서 (1) 기본적 법 이론 설명 -> (2) 주요 법 조항 설명 -> (3) 대표 판례 이런 식으로 진행이 된다면 미국 법서의 경우 (1) 간단한 Introduction -> (2) 갑자기 분위기 판례? 이런 식입니다. ㅎ 물론 법률 조항이 있는 경우에는 판례 전에 설명을 하지만 매우 간단한 수준입니다. 그래서 공부하는 학생 입장에서 미국의 법서는 한국의 법서보다는 좀 불친절하다는 느낌입니다. '난 떠먹여 줄 생각 없고, 재료 정도는 다듬었으니 너희들이 알아서 요리해서 먹어.'라고 말하는 것 같달까요?
교과서가 다르니 예습하는 방법도 좀 다릅니다. 한국에선 기본적인 이론 및 법 조항의 구성을 이해하는 것이 필수인 반면에 미국에서는 이 판례에 대한 이해가 제일 중요합니다. 판례라는 것이 학생들의 이해를 위해 쓰인 글이 아니기 때문에, 미국 학생들은 case brief를 통해서 자신만의 언어로 판례를 요약/재구성을 합니다. case brief란 다음 수업에 다룰 판례들을 미리 읽어보고 각 판례 별로 당사자/ 사실관계/ 적용 법률 / 판결 및 그 이유 등을 따로 정리하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학생들은 판례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고 수업 시간에 교수님의 cold call에도 대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상적으론 수업 시간에 배우는 모든 판례에 대해 미리 case brief를 써보는 것이 좋지만, 판례를 다 읽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ㅠㅠ 그래서 어떤 JD 학생들은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는 기존 case brief 자료를 참고하거나 책에다 직접 밑줄을 치고 여백에 간단히 적는 book briefing 형식으로 수업을 준비합니다. 저의 경우 처음엔 모든 판례를 case brief 해 갈려고 했으나, 아무래도 쉽지 않아서 book briefing으로 수업 준비를 했습니다.
또 하나 미국 로스쿨 공부에서 중요한 것이 outline 작성입니다. 쉽게 말해서 수업 시간 노트 필기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요약집을 만드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casebook은 이론을 체계적으로 설명하지는 않기 때문에, 추후 시험공부를 위해서는 자신만의 textbook을 만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학교에서도 1학년 초에 워크숍을 열어 outline 작성에 대해 알려주더군요.
그래서 수업 시간에 들어가면 다른 학생들은 모두 노트북 켜놓고 워드프로세서로 노트 필기하는 광경이 일반적입니다. 이걸로 자기만의 outline을 만드는 것이지요. 하지만 저의 경우 수업 시간 교수의 설명을 이해하며 겨우 따라가는 상태였기 때문에 동시에 노트북으로 (속기록 수준의) 필기까지 하는 건 무리였습니다. 그래서 수업 시간에는 최대한 듣고 이해하는데 집중했고, outline은 다른 학생들을 통해서 구하거나 아니면 미국 전역의 로스쿨 학생들이 작성한 outline을 공유하는 사이트에서 구하기도 했습니다.
Outline이 학회에 학생들을 유치하는데 쓰이기도 합니다. 한국 로스쿨에 OO 법학회 같은 학생 단체가 있듯이 이곳에도 무슨 무슨 Law Society들이 많이 있습니다. 특정 영역의 법률에 관한 단체도 있지만 다인종 국가인 만큼 흑인, 라틴계, 아시아계 학회도 있습니다. 가을 학기 초에 회원을 모집하게 되고 가입할 때 일정 입회비를 내야 합니다. 대부분의 학회에서 자기들만의 outline bank를 갖고 있는데, 자기들이 갖고 있는 outline이 좋다고 홍보를 하기도 합니다.
자기가 직접 작성했든 외부에서 구했든 결국 시험 준비를 위해서는 제대로 된 outline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고 오픈 북 시험을 위해서 이것을 요약해 프린트한 것을 시험장에 들고 가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미국에도 여러 가지 보조 교재(studying aid)가 있는데, 각 과목별로 이론 및 판례를 정리하거나 요약해 놓은 hornbook, nutshell 같은 책도 있고 간단한 이론 설명과 연습문제로 구성된 E&E(Examples & Explanations) book 이 대표적인 것 같습니다.
cf) 너무 비싼 미국 case book 가격 ㅜㅜ
한국에선 교과서가 비싸도 5, 6만 원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아끼고 싶어서 고시 서점 사이트에서 열심히 중고 서적을 뒤지곤 했습니다. 그런데 미국법 교과서의 가격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기본적으로 새 책을 사려면 200~300불을 줘야 합니다. 한 학기 교과서를 모두 새 책으로 사려면 백만 원 이상이 드는 끔찍한 상황이 생기는 거죠. 그래서 저는 주로 아마존의 책 렌털 서비스를 이용합니다. 그래도 빌리는 데만 몇십 불을 내야 하니 싼 건 아니지만 사는 것보단 싸니까요ㅠㅠ 학기 초에 빌려서 쓰다가 학기말 끝나고 반납하는 시스템입니다. 특허법 교과서의 경우에는 하나 갖고 있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구 edition을 싼값에 사서 새 책과 비교해서 추가된 내용을 따로 보충하는 방식으로 했습니다. 다행히 로스쿨 도서관에서 모든 과목의 case book을 구비하고 있었고 빠른 순환을 위해 3시간만 빌려주고 있었습니다. 아무튼 미국 법서 가격은 너무 비쌉니다 ㅠㅠ
2. 시험의 차이
한국과 미국 로스쿨 생활에서 시험의 형식과 환경도 많이 다릅니다. 한국 로스쿨의 경우는 거의 모든 시험문제가 사례형이고, 교실에서 다 같이 보는 In-class 시험이었으며, 시험 중 다른 자료는 볼 수 없는 closed book 시험이었습니다.(시험용 법전은 볼 수 있었음) 그리고 무조건 답안지에 손으로 직접 써야 했습니다. 저는 사실 악필인데 학부시절 시험을 봐도 공식과 계산을 주로 썼지 큰 답안지 2 ~3장에 걸쳐 긴 글을 쓴 적은 거의 없기 때문에 고생을 좀 했습니다. 그래서 글씨체를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악필인 사서 생들을 위한 교재도 있었습니다) 연습하기도 했고, 오래 써도 손에 힘이 덜 가고 깨끗하게 써지는 펜을 찾기 위해 여러 가지 종류를 사서 시험해 보기도 했습니다.
미국 로스쿨 시험은 시험의 형식이나 환경 면에서 훨씬 다양합니다. 먼저 시험문제의 경우 사례형 문제가 기본이지만 교수 성향에 따라 객관식 문제 및 간단한 서술형 문제도 같이 출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진짜 오랜만에 OMR 카드를 써봤습니다.ㅎ(여기는 Scantron이라고 하더군요.) 교수의 선택에 따라 In-class로 보기도 하고 집에서 보는 take home 시험도 있습니다. In-class exam인 경우 다른 자료는 볼 수 없는 closedbook 시험 또는 인쇄된 모든 자료를 가져와서 볼 수 있는 open book 시험이 있습니다. open book 시험은 책, 자기 노트 말고도 프린트된 모든 자료를 시험 중에 볼 수 있었습니다. 노트북이나 폰으로 인터넷을 사용하는 것 외에는 어떤 것도 가져와서 볼 수 있었습니다. 단순히 암기 여부를 평가하기보다는 어떻게 적용하는지를 평가하기 위함이 아닐까 싶습니다.
take home 시험의 경우 미국에서 처음 경험한 방식인데, 사실상 시험 중에 모든 것을 참고할 수 있습니다. 책, 노트는 물론 이론적으론 인터넷에 있는 내용을 검색해서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물론 시험에 도움이 될는지는 모르지만요 ㅎ) 시간도 8시간 또는 24 시간 등 교수가 선택하기 나름입니다. 구체적으로 설명드리면, 시험 기간 마지막 날을 답안 제출기한으로 명시하고 시험 기간 안에 학교 시험 사이트에 접속해서 답안을 제출하면 됩니다. 사이트에 접속해서 문제 파일을 여는 순간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고, 8시간 또는 24시간 안에 답안을 워드로 작성해서 올리면 됩니다. 저는 8시간 take home 시험을 쳐봤는데, 시간이 막 모자라거나 생각이 안 나서 못 쓰는 경우는 없는 게 장점이지만 In class 시험보다 고통의 시간이 길다는 단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루 종일 시험으로 고통받아야 하는 24시간 시험은 너무 힘들 것 같습니다. ㅠㅠ
또 하나 특이한 점, 시험 중에 노트북으로 답안을 작성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한국의 경우 노트북으로 시험 답안을 쓴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고 그러한 시스템도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이곳에선 In class 시험을 볼 때 미리 노트북에 시험용 프로그램을 깔아야 하는데, 답안 작성 외에 모든 기능을 차단하는 역할을 합니다. 손으로 쓰고 싶은 학생을 위해 연필과 답안지도 제공하지만, 확실히 타이핑이 손보다 빠르고 spell check 기능도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학생들이 노트북을 쓰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다른 점이 anonymous grading입니다. 한국에선 그냥 답안지에 학번과 이름을 적어서 냈는데(교수님에 따라 학번만 적거나 개인 정보가 있는 부분을 스테이플러로 찍어서 채점 시 안 보이게 하시는 분들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여기서는 학생별로 exam code를 부여하고 답안에 이름 대신 기입하라고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절대로 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정보를 쓰지 말라고 강조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교수님들이 기출문제를 공개하기도 합니다. 로스쿨 도서관 사이트에 가면 따로 Archive에 과목 및 교수별로 몇 년 치의 기출문제가 공개되어 있습니다. 모든 기출문제가 올라와 있는 것을 아니지만 한국에서는 학생들 사이에서만 알음알음 공유되는 기출문제가 이렇게 공개되어 있다는 것이 색달랐습니다.
마지막으로 시험 기간의 분위기는 미국 로스쿨이 좀 더 으쌰 으쌰 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다른 학교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은데, 시험기간에 취업 지원센터나 일부 학회에서 커피나 도넛 등 간단한 다과를 비치해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먹고 한숨 돌릴 수 있게 하더군요. 한국에 있었을 때도 이런 게 있었으며 시험기간이 좀 더 삭막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