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에 아내와 함께 극장에 갔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민 6년 차에 처음으로 극장에 가서 영화를 봤다. 왜 이제야 처음으로 극장에 갔는지는 후술 해보겠다.
이번에 개봉한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을 아내가 보고 싶다고 했었다. 다행히 한인 상권 밀집 지역에 있는 AMC에서 상영을 한다는 걸 아내가 찾았고, 예약도 해서 오후에 보기로 했다. 역시 수수료의 나라 미국답게 예매 시 3불씩 붙었는데, 신기하게도 토요일 오후 상영 표를 우리나라 조조할인처럼 할인해 줬다. 시간에 딱 맞춰서 도착했고 식음료를 파는 곳에 갔더니 뭐 거의 식사 수준의 음식도 판다. 소다와 팝콘은 기본이고 나초는 한국에도 있고, 그런데 치킨 텐더와 피자 비슷한 것도 팔았다. 고민을 좀 하다가 가격도 너무 비싸고 끝나고 저녁도 먹을 거라 큰 생수 한 병 샀다. (이것도 비싸ㅠㅠ)
상영시간 5분 전에 들어갔는데 웬걸. 우리 밖에 없었다. 전날 예매인데도 불구하고 예매한 좌석이 10명이 안 된다고 아내가 그랬는데 이거 너무한걸? 생각이 들었다. 뭐 만석을 예상한 걸 아니지만 그래도 한인 밀집지역이고 이름 있는 감독인데 너무 썰렁해서 당황했다. 다행히 조금 있다가 사람이 띄엄띄엄 들어오긴 했으나 그래 봤자 총 관람객 수가 10명 좀 넘었던 것 같다.
다행히 영화는 재밌게 보았다. 평소 박찬욱 감독 작품을 즐겨보거나 찾아보는 편은 아니지만, 남녀 간의 사랑에 있어서 '정말 나를 좋아하나?'라는 흥미진진한 질문을 바탕으로 미묘한 심리묘사가 재밌었다. 거기다 누가 살인자인지 알아가는 미스터리/스릴러도 한 축이라 로맨스와 다른 결의 긴장감이 있었다. 중간중간 섞여있는 위트나 센스도 재밌었고, 박찬욱 감독 작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화려한 색감의 벽지, 커튼, 드레스 등 그의 시그너쳐도 있었다. 중년의 감독임에도 불구하고 모바일이라는 현대 기술을 적극 차용해서 신선한 화면 구성이랄지 이야기의 반전 요소로서의 적극적인 사용이랄지 이런 측면에 점수를 주고 싶었다. 깨알 같은 김신영의 등장도 또 다른 재미
영화 외적인 얘기로 영화관 의자가 좀 불편한 것 같다. 한국에서 영화관 의자에 앉으면 푹 안겨있는 느낌인데 여긴 안 맞는 옷을 입은 느낌이랄까. 영화를 보다 보면 엉덩이가 앞으로 빠지는 느낌이라 의식적으로 중간중간 엉덩이를 의자 안쪽으로 밀어야 했다. 아내도 많이 불편했다고 하니 나만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아무래도 사람들의 평균 사이즈가 크니 의자도 커서 그런가?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와서, 나는 왜 이제야 영화관에 갔을까? 생각해보니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땐 낯섦 때문이었다. 막 왔을 땐 흔한 동네 마켓 가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낯선 곳. 한국에서 소위 Majority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것도 한국에선 자각하지도 못했다가 이곳에 와서야 아, 내가 한국에서 어떤 지위를 가지고 있었고 그걸 당연하게 생각했구나 깨달았다) 미국에서는 그냥 Minority인 동양 남자일 뿐이다. 성격도 내성적이고, 영어를 틀리지 않고 잘해야 한다는 부담이 오히려 자신 있는 태도와 의사소통의 목적 달성을 방해하는 스타일이라 더욱 외출 자체를 꺼리게 된 것 같다. 그리고 외출하게 되면 나도 모르게 좀 움츠러들고 자신 없어지는, 약간 루저 모드로 변하는 그런 게 있었다. 이런 상황에 어둡고 사람들이 바글대는 영화관에 간다는 건 꿈도 못 꿀 일이었다. 다행인지 아내나 나나 특별히 영화관에서 보고 싶은 영화도 없었다.
그러나 판데믹이 시작되고 이제는 모든 외출, 특히 사람이 모이는 곳은 필요하지 않으면 거의 가지 않게 되었다. 이건 코로나 감염 방지의 목적이 크지만 또한 아시아인을 향한 증오범죄에 대한 공포도 컸다. 실제 통계상으론 차이가 없을지라도 이미 공포가 심어진 상황에선 그건 상관없다. 게다가 애틀랜타에서는 아시아 증오범죄로 보이는 총기난사 사건도 났으니.
코로나 시기에 다행히 단독 주택으로 이사를 왔고 공간이 커지나 오디오/비디오 시스템에 욕심이 생겼다. 그동안 쓰던 40인치대 티브이에서 단숨에 75인치로 점프했다. 그리고 가성비가 좋은 스피커와 리시버를 사서 5.1 채널을 거실에 설치했다. 그리고 애플티브이를 설치해서 쾌적하게 스트리밍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그렇다 보니 더더욱 영화관을 안 가게 된 것 같다.
처음 시작이 어려운 법이니 또 영화관 가는 건 어렵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만석인 영화관에서도 한국처럼 편하게 볼 수 있을진 모르겠다.
P.S. 그런데 여긴 본 상영 앞에 나오는 다른 영화광고가 너~무 많다. 앞 광고가 거의 20분이라니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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