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케어한 지 2달 정도가 되자 나도 아내도 아이 돌봄에 좀 익숙해지고, 특히 나는 아이의 울음소리에도 패닉 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100일이 다가오면서 아이의 울음 데시벨이 한 두 단계 올라선 거 같아서 가끔 힘들 때가 있다...) 몇 주전까지 밤낮없이 1시간 30분마다 수유하느라 부부 모두 극한을 체험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그 시기는 지나고 수유텀도 좀 더 길게, 일정해지고 있었다.
때는 아이가 7주가 지나고 8주 차로 접어든 주말이었다. 토요일 오후 아이는 아내 무릎 위에서 잠을 자고 있었고 그 틈을 타서 아내가 조심스럽게 아이의 손톱을 자르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의 왼쪽 네 번째 손톱의 옆부분과 살이 맞닿은 부분이 벌겋게 좀 부어올라 있었고 손톱 밑에는 아른아른 보이는 염증을 아내가 발견했다. 평소 아내가 세심하게 관리해왔음에도 말이다. 이 정도면 우리가 아이 손을 만졌을 때 아프다거나 불편하다는 신호를 보냈을 텐데 아이는 전혀 그런 기색 없이 잘 자고 있었던 것이다.
염증으로 인해 열이 났을까 봐 체크해 보니 다행히 열은 없었다. 아직 통증도 없고 열도 없는 상황에서 병원을 가야 할지 아내와 고민했다. 평소 가던 소아과가 편하겠지만 자리가 날지 불확실하고 자리가 난다 하더라도 월요일이 가장 빠른 시간이었다. 굳이 그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바로 Urgent Care에 가기로 했다. Urgent Care/Immediate Care라는 의료기관은 한국에는 없는 종류의 의료기관이다. 한국 같으면 굳이 예약하고 가지 않아도 웬만하면 당일 치료받을 수 있지만 (물론 요즘 소아과는 상황이 다르다고 알고 있다) 여기는 의사를 보려면 예약을 해서 짧게는 몇 주 길게는 몇 달을 기다려야 한다. 그러니 만일 내가 좀 아파서 의사 선생님을 보고 싶은데 몇 주를 기다릴 수는 없고 그렇다고 응급실을 갈 정도는 아닌 경우에 가는 곳이 Urgent Care 같은 곳이다. 이곳은 주말 낮에도 운영을 하고 있고, 좀 기다릴 수는 있지만 예약 없이 가도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즉 일반 병원과 응급실이 커버하지 못하는 환자들이 가는 클리닉이라고 볼 수 있다.
아내가 근처 Urgent Care에 확인을 위해 전화를 했는데, 그곳은 신생아를 받지 않기 때문에 소아과 전용 Urgent Care를 가야 된다는 답을 들었다. 검색해 보니 차로 20~30분 되는 거리에 Children's Healthcare of Atlanta Urgent Care가 있어 가기로 했다. 도착하니 이미 아이들을 데리고 온 부모들이 있었고 우리는 바로 등록을 했다. 벽에 걸린 티브이에는 기다리는 환자들 리스트가 보였고 우리는 한 40분 정도 기다려야 된다고 했다. 기다리는 동안 수유할 때가 다가와 미리 준비한 젖병을 물렸다. 어린이 병원이니 수유실이 따로 있을 수도 있겠다 기대했는데, 그런 시설을 없어 그냥 환자들이 없는 구석에서 수유를 했다. 낯선 곳인데도 불구하고 다행히 아이는 별로 칭얼 대지 않고 수유 후 아기띠에서 잠이 들었다.
마침내 우리 차례가 돌아와 진찰을 받을 수 있었다. 우리가 상황을 설명하고 의사 선생님이 아이 손가락 상태 및 기타 진찰을 했다. 그런데 선생님 왈, 아이가 너무 어려서 바로 여기서 치료를 할 수 없고 소아과 응급실로 가서 항생제를 써도 괜찮은지 테스트를 해야 한다고 한다. 근처 응급실에 referral을 보낼 테니 그쪽으로 가보라고 한다. 바로 치료받을 줄 기대했는데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니 좀 실망스러웠지만 어쩌겠나 가는 수밖에.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 Children's Healthcare of Atlanta 병원 응급실이 있었는데, 그곳은 아내가 산부인과 검진을 받았고 출산한 병원 근처에 있어서 익숙한 곳이었다. 응급실에 들어서니 일반 응급실만큼 급박한 분위기는 아니었으나 치료를 기다리는 부모와 아이들로 꽤 붐볐다. 우리는 곧 등록을 했고, 간호사와 문답을 작성하고 개인 치료실로 안내받았다. 응급실 하면 침대가 쭉 있고 칸막이로 구분되어 있을 줄 았았는데, 이곳은 환자가 개별 방에서 치료받는 시스템이었다. 이때부터 인내를 요하는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언제쯤 오나 할 때 소아과 의사가 와서 진찰을 봐줬다. 덩치가 산만한 소아과의가 아이의 그 조그마한 손톱을 진찰하는 모습이 재밌기도 하고 좀 불안하기도 했다. 우리가 어떻게 Urgent Care를 통해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 설명하자 소아과의는 약간 갸우뚱하면서 굳이 그럴 필요는 없는데...라고 한다. 우리는 속으로 그 Urgent Care 선생님을 좀 원망하면서 아이의 치료를 기다렸다. 치료는 간단했다. 아이의 손톱 부분에 마취 연고를 발라 마취를 시킨 다음에 조그맣고 날카로운 칼로 염증부위를 째서 고름을 빼내는 처치였다. 이제 인생 2개월인 아이를 생각하면 짠했지만 이게 최선이었다.
아이는 치료를 받으면서 자지러지게 울었지만 그래도 금세 울음을 그쳤다. 병원에서 항생제 처방을 받아 다음 날 근처 약국에서 픽업을 했고 하루에 세 번 일주일간 먹이면서 상처가 잘 아무는지, 또 염증이 나지는 않는지 잘 관찰했다. 다행히 상처도 잘 아물었고 재발하지도 않았다.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가 아파서 급하게 병원에 갈 일이 언젠가 있을 거라 생각했으나 생각보다 이르게, 그리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유로 가게 되었다. 그 이후로 우리는 아이의 손톱을 더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고 다행히 지금까지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다만 그 Urgent Care에서 그냥 치료해 줬다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만약 그랬다면 시간도 덜 들고, 한국에선 상상할 수 없는 금액의 병원비가 청구되지도 않았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더 황당하고 답답한 경험담을 들었기 때문에 이 정도로 다행이다라는 생각도 든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아이가 크게 아프지 않고 잘 자라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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